모든 순간
"나 커서 형아랑 결혼 할거야!"
너는 알까, 그 어릴적 서로가 서로였던 우리의 시간 중 네가 울먹이면서 했던 그 말을.
수 없이 많은 밤을 너와 보내면서 내 가슴 속에는 은연 중에 그 말이 계속 맴돌았던 것을.
"한도준, 꼬맹이가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워왔어."
"더 커서와. 그땐 내가 너랑 결혼 할 지 생각해 볼테니까."
속으로는 좋았으면서 울먹이며 고집피우는 네 모습에 나는 괜시리 심술이 나서 너의 삐죽이는 입술을 손으로 당겨 오리처럼 만들며 짖궃게 말했었지. 그때 네 모습이 가련하면서도 귀여워서 심장이 요란했었다고, 그 속내를 너에게 여전히 비추지 못한다.
너는 알까, 도준아. 네가 나를 세상이라 정립하던 어린 시절이 나에게는 이미 네가 태어난 순간부터 너라는 세상에 내가 들어가버린 걸. 아니 너는 모를거다. 그저 순수하게 '형아.'하며 웃던 바보였으니까. 무자각한 네 그 마음을 네가 알면 좋겠으면서도 알지 않기를 바랬다.
너의 순수한 사랑과 나의 지독한 열병은 다른 거였으니까.
"푸흐, 형아한테만 애기하고 예쁜이하고 다 할 거야. 내가 애기여도 형아는 내 형이잖아."
"아! 아니다. 내 세상이다."
우리가 재회하고서도 네가 말했던 이 순수한 사랑고백을 나는 잊지 못한다. 내가 네 세상이라는 말이 덧 없이 사라질 편린 같아서, 부서져 버릴 잔상 같아서. 그래서 나는 네가 만든 그 세상에 기어이 들어가 살고 싶었어.
"그래, 네 세상 해. 전부 다 가져가."
"…그러니까, 도준아."
"네 세상에서 나를 살게 해 줘."
네가 만든 세상에서 평생을 살아간다면 나는 그곳이 어둡고 숨 막히는 심해여도, 살아 갈 수 있을 거 같았다.
도준아, 오늘은 우리가 재회한 날이자 수면 위에서 황혼을 보는 날이야. 우리의 창백한 여명 위에 떠오르는 황혼 빛 아래에서 나는 어색하게 하얀 제복을 입고 너를 기다리고 있어. 저 멀리 맞은 편에 네가 서길 바라며.
* * *
장엄한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는 축가가 되었고, 모든 적막 속에서 도준이 올라오는 것을 보자 재준의 시간은 그대로 멈춰버렸다. 같이 심해에 빠지자 했던 선언, 수면 위에서 보자던 황혼, 그리고 어릴 적 울먹이며 도준이 말했던 '형아랑 결혼 할 거야.' 라고 다짐했던 그 작은 약속.
결국 도준이 만든 세상 속에 재준은 갇혀버렸다. 아니, 도준이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갇혔는 지도 모르겠다. 한재준에게 한도준은 기꺼이 빠져 죽을 영원한 심해였으니까.
황혼 빛을 등지고, 네가 그곳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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