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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사의 수면 아래/DREAM FIC

눈사람

내가 12살, 그가 18살 때 눈이 발목까지 쌓여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던 날이었다. 고등학생이었던 그의 하교를 기다리며 나는 학교가 일찍 끝난 김에 그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집 앞에 쌓인 눈을 모아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작았던 눈덩이가 점차 커져가는 모습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저 그가 내가 만든 것을 보고 잘했다고 칭찬 받고 싶어서 코 끝과 귀가 빨개진 줄도 모른채 눈을 굴렸다.

작았던 2개의 눈덩이는 내 마음을 아는지 점점 커져갔고 어느덧 내 키와 비슷한 눈사람이 되었다. 주변의 나뭇가지를 주워와 팔을 만들어주고 두개의 돌멩이를 콕콕 박아넣고 내가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둘러주니 그럴듯한 눈사람이 되어있었다.

처음으로 그의 도움 없이 만들어 본 눈사람이 뿌듯해 옆에 쭈그리고 앉아 그가 얼른 오길 기다렸건만, 그는 친구들과 놀다 들어오는 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빨리 보여주고 싶다는 초조함에 나는 결국 일어나 그의 마중을 나갔다.

집에서 조금은 떨어진 횡단보도 앞에 서서 길을 건너려는 찰나 맞은 편에 그의 모습이 보여 나는 내 모습이 어떤지도 잊은채 반가움에 손을 흔들며, 마냥 웃어보였다.

"형아!"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자마자 나는 그에게 달려가 안겼지만 그는 내 모습을 보더니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귀와 볼은 새빨개져 있었고, 내가 입고 었던 떡볶이 코트는 눈에 의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리고 훤히 드러나는 목. 그는 결국 미간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었다.

"추운데, 꼴이 이게 뭐야."

그 말에도 나는 그에게 내가 만든 눈사람을 자랑하고 싶어서…아니면 그가 좋았기에 그저 웃으며 손을 잡고 이끌었다. 축축해진 장갑 덕에 차가울만도 한데 그는 오히려 내 손을 더 꽉 잡아오며 내 이끌림에 순순히 따랐었다. 그때 그의 손으로 전해지는 온기는 참으로 따뜻했다.

"도준아, 천천히 가. 그러다 혼자 자빠지지 말고."
"무슨 일이길래. 우리 애기가 이렇게 신이 났나."

나는 그의 물음에도 그저 "형아, 빨리!"라는 말만 하며 신이 났었다. 뽀드득 눈이 밟히는 소리, 나의 신난 웃음기 가득한 쫑알거리는 말들. 이 순간이 덧없이 행복했었다.

그를 이끌고 도착한 집 앞 놀이터, 그리고 내가 열심히 만든 눈사람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있었고 내 웃음기 가득하던 얼굴은 한 순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나보다 한참이나 큰 그를 올려다 보며 결국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에게 보여주고 싶다던 나의 순진함이 처음 무너져 내렸던 날이었다.

"형아, 눈사람…눈사람 만,들었는데…"
"형, 보여,주려고…"

눈물에 젖은 말은 뭉개져 터져나왔고 그는 나를 보며 귀찮을 법도 한데, 내 작은 머리통에 자신의 큰 손을 얹으며 헝클어트렸다. 그때 그의 표정은 어린 동생이 그저 대견하다는 표정이었다.

"하…. 다시 같이 만들면 되지. 애기야."
"그래서 신이 났던 거구만, 이렇게 귀와 볼이 새빨게진 줄도 모르고 이 추운날 …. 바보네."

장갑도 없으면서, 손이 시릴법도 한데 제 동생의 순수함이 좋았던 걸까. 그는 웅크리고 앉아 옆을 툭툭 치면서 이리오라는 듯이 손짓을 하고는 무너진 눈사람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울먹이며 그의 옆에 앉아 훌쩍거리며 같이 눈을 굴렸다.

해는 어느덧 뉘엇뉘엇 저물고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같이 눈사람을 완성했다. 내 키 정도 오는 그의 미소처럼 웃고 있던 눈사람을.

그리고 그제서야 내 눈에 들어왔던 새빨개진 그의 손. 나는 내 장갑이 그에게 맞지 않을 법도 한데, 벗어서 꾸깃거리며 씌워주려 노력했던 거 같다. 그때, 그는 뭐라고 했더라. 오랜 시간이 지난 편린이라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가 지었던 미소는 여전히 오래 기억에 남아버렸다.

* * *
잠시 생각에 잠긴 틈에 내 등 뒤로 다가와 그가 나를 끌어안았다. 그때처럼 눈이 많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고 나는 그 광경을 보며 그때의 기억을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느라, 내가 부르는 것도 못 듣나."

다가온 온기에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그를 바라보며 머쓱하게 웃었다. 그때의 추억을 그는 기억할까. 입을 열려던 순간.

"눈이 많이 왔는데, 나가서 눈 사람이나 만들까. 도준아."

그 말에 나는 해사하게 웃으며 끄덕였다. 그리고 나직히 들려온 한마디. 오랜 시절이 지나 기억 나지 않던 그의 말, 그때와 같이 그가 해준 그 말이 다시 내 가슴속에 심어졌다.

"손, 이리줘."
"장갑은 필요없어. 네 손이 따뜻하니까. 계속 잡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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