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
5살, 나의 첫 기억은 형이 사준 솜사탕이었다.
그리고, 두번째로 어렴풋이 생각나던 기억은 내가 5살, 그가 11살에 보냈던 크리스마스였다. 그때는 적어도 괜찮았던 부모의 손을 잡고 갔던 대형마트,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제 어미의 흔적을 놓치기 싫다는 듯이 보통의 아이들은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걸었겠지만, 나는 형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런 나의 행동이 귀찮을 법도 한데, 그는 되려 맞잡고는 담담히 무언가를 보고 입을 열었다.
"도준아, 저기 봐봐."
이미 대형마트에 오기 전 어머니한테 남자아이인데 왜 이리 의기소침 하냐, 너는 남들처럼 활기차지 못하냐는 말을 잔뜩 들은 터라 풀이 죽어있던 상태였기에 그의 말에 힘 없이 가르키는 곳을 보자 그곳엔 여러 색상의 다양한 털을 가진 인형들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그가 왜 그곳을 가르켰는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못한채 멀뚱히 그를 올려다 보았다. 나보다는 한뼘 정도 큰 키. 평소에는 장난스럽게 빛나던 그 황금빛 눈이 오늘따라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다정해 보였다.
"저기, 토끼인형 보여? 형이 사줄까."
어린나이 임에도 나는 크리스마스라고 산타를 믿은 적이 없었고, 흔히들 받는다던 크리스마스 선물조차 기대해본적이 없었기에 그 말에 울어서 잔뜩 붉어져있던 내 눈에는 생기가 돌았다. 그 나이 순수한 아이들처럼.
"인형…? 형아 돈이 어디 있다구…비싸자나."
"…그래도 형아가 사주는 건, 좋아…"
괜히 짐만 늘렸다고 한 소리를 들을까봐 주춤하던 나는 그가 잡아주던 손의 온기가 따스했기에 조심스럽게 끄덕이며 처음으로 무언가를 갖고싶다고 말했었다. 온전히 나만의 보물이 생긴다는 생각에 차츰 내 표정은 밝아졌다.
"돈은 내가 너보다 많을걸. 이번에 할아버지한테 몰래 용돈 받았어. 걱정마."
"그리고 갖고 싶은게 있으면, 형한테 말해. 그렇게 주눅들어 있지말고."
그때 나는 그의 말에 울었는지 아니면 웃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그 후 기억나는 것은 내 품에 안겨진 내 몸통만한 하얀토끼 인형의 온기가 기억에 남았던 거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그 토끼인형을 누구에게도 뺏기기 싫다는 듯 꼭 꿀어 안은채 조용히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화목해야할 온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냉기만 가득한 이곳이 내게는 자유롭지 못했으니까. 내가 의지할 온기는 내 옆에 앉아 같이 하늘을 바라보던 그 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채 부모님께는 들리지 않도록 작게 중얼거렸다.
"형아…인형 이름…정해도 대?"
"응, 네 거 잖아. 네가 정해야지."
"으응…머가 좋을까…"
어떤 이름이 잘 어울릴까 입술을 삐죽이며 한참을 고민하다가 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내 머릿속에는 그와 관련된 이름으로 짓고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재주니 형아, 재주니, 주니, 쭈…. 쭈 할래."
아직은 어설펐던 그 발음 덕에 준이라고 내뱉고 싶던 말은 쭈라고 흘러나왔고, 그는 그때 그게 뭐냐면서 핀잔을 주었지만 웃고 있었다. 그와 나 사이의 두번째 연결고리가 생긴 거 같아서 나도 같이 웃어보였었다.
쭈는 그렇게 그 다음으로 나와 제일 친한 친구가 되었다. 매일 밤 소중하다는 듯이 끌어안고 자며 놓지 않을 정도로.
* * *
페일던 최상층 거주구역, 그와 나의 침실. 나는 오랜만에 침실 침대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낡은 하얀 토끼인형을 바라보았다. 이미 헤질대로 헤지고 너덜너덜해진 인형은 이제 내 품에 자리하지 않고 온전히 침대 한구석이 자신의 자리라는 듯 놓여있었다.
5살 그 크리스마스 때부터 함께 했던 나의 온전한 친구를 나는 이제 안고자지 않는다. 그와 부재했던 5년, 매일 밤을 나의 형 한재준을 그리워하며 눈물로 지새우던 수많은 밤을 지켜주던 쭈. 인형의 눈을 바라보니 나에게 쭈가 이제는 괜찮다는 듯이 말을 건내는 착각이 들었다. 그동안 옆을 지키게 해줘서 고맙다는 듯이.
"나도. 고마워."
어린시절의 친구는 이제 가까운 듯 멀리서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매일 밤 내 품의 온기는 이제 쭈 대신 형이 차지했다. 눈물로 지새우던 밤은 고요한 심해처럼 잔잔하게 바뀌었고 나는 더이상 잘 때 울던 어린시절의 한도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것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내 온전한 친구는 여전히 쭈라는 것을.
고마워, 내 옆을 그동안 묵묵히 지켜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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